언제 어디서든 긍정의 대답과 말만 들린다면 어떨까요? 모두가 다정하게 맞장구를 쳐주는 세상은 분명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 불편한 논쟁과 고성, 심지어 갈등도 없는 사회. 어떤 이의 말도 존중받고 수용되는 평화로운 분위기.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글에서는 상상력을 한껏 발휘해 "모두가 예스맨인 세상"이 만들어낼 세 가지 황당한 풍경들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표면적인 평화 속에 감춰진 역설적인 진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진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알아보겠습니다.
1. 긍정 바이러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예스"만 말하게 되는 긍정의 바이러스가 퍼졌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기침도 열도 없지만, 단 하나의 명확한 증상을 동반합니다. 바로 어떤 말과 제안에도 무조건적으로 "좋아"라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바이러스가 퍼진 직후에는 여러 사람들과의 갈등이 줄어들고, 조직이 매끄럽게 굴러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긍정의 대답이 많아지고 늘어날수록 충돌이 생기지 않는 사회는 유연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왜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걸까?", "정말 모든 결정이 옳은 걸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 긍정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사고가 사라지게 되고, 눈앞의 결정이 이상하거나 위험해 보여도,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 길은 막다른 길입니다"라는 경고가 붙어 있어도 사람들은 그저 웃으며 좋다는 대답과 함께 발을 내딛을 것입니다. 잘못된 정보와 상식에 어긋나는 주장도 박수받으며 통과되는 것처럼, 스스로를 점검하고 조율할 수 있는 기능을 잃어버린 사회가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이더라도 이면에는 심각한 균열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 상상을 결코 단순한 허구로만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현실 속에서의 우리도 비슷한 장면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다수가 동의하는 분위기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게 되거나, 혼자만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침묵하게 되는 상황의 순간들을 의외로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결국 "생각 없는 예스"는 사회 전체를 마비시키고, 변화와 진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생각과 토론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동의가 없다면, 수많은 "예스"는 그저 무색무취한 소음일 뿐입니다.
2. 예스 요금제 사회, 동의에는 가격이 붙는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의 "예스"가 하나의 상품처럼 거래되기 시작한 세상을 상상해 보면, 긍정의 말 한마디는 아마도 무료가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의 제안에 동의하려면 금액을 결제해야 하고, 특정인의 "예스"는 프리미엄 요금제로 더 높은 금액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구독자 수가 많을수록 발언권이 커지는 구조처럼, 이제는 "예스"를 얼마나 잘 팔 수 있느냐가 사람의 영향력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치인은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수많은 "예스"를 사야 하고, 기업은 신제품 출시에 앞서 유명 인플루언서의 "예스"를 대량 구매하게 된다면 더 이상 진심의 표현이 아니라, 매매 가능한 사회적 자산으로 변해버릴 것입니다. 동의의 가치는 시장의 논리에 따라 오르내리고,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마음보다 가격을 먼저 생각하게 되면 "이 제안에 정말 동의하느냐" 보다는 "이만큼 받았으니 예스해야지"라는 식의 계산이 일상화되는 사회 속에서 정작 중요한 건 점점 잊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진정성이 점점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사회는 형식적으로 풍요로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가면을 쓴 채 움직이고 있는 셈입니다. "예스"는 넘쳐나지만 진짜 공감은 사라지고, 대화는 있지만 진정한 이해는 존재하지 않는 이런 사회는 "예스"를 듣고도 확신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립니다. 이 긍정의 대답이 진심인지, 아니면 대가를 바라고 나온 말인지 누구도 구별할 수 없는 세상일수록, 그 말에 담긴 의미는 점점 더 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3. 진짜 긍정, 대답을 끌어내는 단 한 가지 방법
모두가 긍정의 대답을 말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생각 끝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일 것입니다. 수많은 대답이 오고 가는 와중에 "내가 정말 이 말에 동의하는가"를 되물을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거절의 두려움 없이 더 나은 "예스"를 준비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에서 잠시 멈춘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조용하지만 강한 용기입니다. 이 세상에서 진짜로 의미 있는 "예스"는, 단지 분위기에 맞춘 호응이 아닌, 스스로의 생각과 느낌으로 나오는 공감의 표현입니다. 그러한 "예스"는 설득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도 신뢰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긍정의 말을 듣지만, 그중에서 유독 마음에 남는 한마디가 있습니다. 그 한마디는 보통 즉석에서 겉치레로 나온 말이 아니라, 머뭇거림과 망설임을 지나 도달한 동의일 때가 많습니다. 그때의 "예스"는 공허한 반응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 진짜 긍정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우리 일상 속에는 빠르게 대답을 바라는 압박이 많습니다. 협업과 사회생활, 인간관계 속에서 거절은 종종 무례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진짜 건강한 관계는 무조건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솔직하게 나누고, 그 차이 속에서 의미 있는 접점을 찾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답은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끄덕이는 집단적인 동조가 아니라, 진심이 섞인 다양한 대화 끝에 탄생하는 공감입니다.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회는 "예스"라는 단어가 많아지는 사회가 아니라, 그 한마디에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충분히 녹아든 사회일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한 마디의 대답은 열 마디의 형식적인 동의보다 훨씬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