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옹"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인물이 같이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독특한 감정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틸다라는 어린 소녀와 레옹이라는 고독한 킬러의 관계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안타까움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복지라는 시선으로 이 관계를 다시 살펴보면, 마틸다가 보호자 대신 킬러를 선택하게 된 이유와 배경에 자리하고 있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들이 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속 장면을 바탕으로, 정서적인 돌봄과 보호 체계의 공백,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복지의 본질을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1. 문을 두드린 아이, 열지 않은 건 사회였다
"레옹"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마틸다가 가족이 모두 살해된 직후에 복도 끝까지 걸어간 다음 레옹이 사는 집의 문을 두드리는 장면입니다. 그 순간 그녀는 울지도, 소리치지도 않은 채 조용히 문 앞에 서서, 그 문 너머에 누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채 레옹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누구라도 좋으니 자신을 받아줄 누군가가 있기를 바랐던 겁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영화적 연출을 넘어서, 위기 상황에 처한 아이가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다른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문은 원래 마틸다가 찾아야 할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이 사회 안에 다양한 보호 시스템인 학교나 보호기관, 지역 아동센터에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문은 열리지 않았거나, 그녀가 다가갈 수도 없었으며, 혹은 존재의 유무조차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현실에서도 많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인 보호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호체계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손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지 않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마틸다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문은, 바로 킬러가 살고 있는 집의 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무관심한 사회 속에서 가장 위험한 곳을 가장 안전한 장소로 착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장면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틸다처럼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고 싶을 때, 우리는 그 문을 열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복지란 결국,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을 때 망설이지 않고 열어주는 시스템이 되어야 합니다.
2. 총을 든 보호자, 그에게 마틸다를 맡겨야 했을까?
레옹은 언제나 마틸다를 지켜줍니다. 낯선 이의 접근을 경계하고, 식사도 함께 하며, 때로는 장난도 칩니다. 마틸다를 지키는 레옹의 방법은 대다수가 일반적으로 보호하는 보호자의 방법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는 국가에서 등록된 보호자도 아니고, 그 어떤 제도 안에도 들어 있지 않은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틸다의 보호자였습니다. 왜일까요? 복지의 핵심은 "관계"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거나 돌봐주고 ,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감각자체가 복지의 시작입니다. 마틸다는 가족들과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학대와 무시를 당하며, 그 어디에서도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제도와는 별개로 레옹은 그런 그녀를 외면하지 않고 "같이 밥을 먹는 어른"이고, "내 말에 반응해 주는 어른"이었습니다. 하지만 킬러인 레옹과 어린 소녀의 마틸다가 보여주는 이 관계는 구조적으로 매우 위험합니다. 보호자가 되어주어야 할 존재가 폭력의 세계에 속해 있고, 보호받아야 할 아이가 그 속에서 안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역전 구조이며, 정서적인 복지의 공백이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한 선택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제도적 보호장치가 있었다면, 마틸다는 킬러인 레옹이 아닌, 안전하고 지속적인 보호 시스템 안에서 회복과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위기관리 개입팀, 아동 정신건강 전문가, 단기 보호시설 등 사회에서는 이미 많은 복지 장치를 갖추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장치들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마틸다가 실제로 그 "혜택을 받고 있는가"입니다. 총을 든 보호자가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이러한 현실은, 사실상 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역설적인 증거입니다. 우리는 감동을 받기보다, 왜 보호받아야 할 그 아이가 거기에 머물고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3. 사랑은 있었지만 시스템은 없었다
레옹과 마틸다 사이에는 분명히 상호작용하는 감정이 있습니다. 그 감정이 우정, 사랑, 애틋함의 여부를 떠나 두 사람은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신뢰합니다. 때로는 서로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관계를 쌓아갑니다. 그 모습들은 아주 따뜻하고 인간적인 감정이 드는 동시에 한없이 불안정하고 위태로워 보입니다. 그 이유는 아무런 제도적 기반이 없는 관계이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는 종종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복지는 필요 없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변하고, 환경은 언제든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사회 제도는 그러한 변화와 위기를 대비한 "안전장치"입니다. 레옹과 마틸다의 관계는 사회적 보호망이나 상담 지원, 의료적 개입도 존재하지 않는 오직 서로의 감정에 의존하고 충실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레옹이 죽음을 맞이하고, 마틸다는 또다시 혼자가 됩니다. 이 비극적인 영화의 결말은 복지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 관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무리 애틋한 감정과 사랑이 있어도, 사회적인 보호망이 없는 관계는 위기에 취약합니다. 마틸다에게는 정서적인 복지와 더불어 제도적 복지의 뒷받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영화 속 아름답고도 안타까운 이야기는, 우리가 복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복지는 감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지켜주는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감정들이 무너지지 않고, 관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복지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