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의 끄트머리에 있는 가장 미지의 공간입니다. 기후의 위기를 느낄 수 있는 최전선이기도 하고, 인간의 탐험 정신이 한데 모이게 된 과학적으로 나아간 기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극지방에는 어떠한 복지 제도도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일정한 제도와 시스템 속에서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남극만이 유일하게 예외인 이유는 바로 "공식적인 시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지내고 일하는 사람들, 살아 있는 생명들은 아무 보호 장치도 없이 머물러야만 하는 걸까요? 이번 글은 남극을 하나의 직장이나 심리적인 공간, 그리고 복지 실험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이곳에 복지가 필요한 이유를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1. 남극의 보상, 사람을 위한 설계
남극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대부분은 각국의 연구기관에서 파견된 과학자나 기술자들일 것입니다. 이들은 한여름에도 영하를 넘나드는 환경 속에서 오랜 기간 동안 가족이나 사회와 단절된 채로 각종 실험과 관측을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극한 날씨의 환경과 일상생활 여건의 불편으로 인해, 정부나 기관은 이들에게 일정한 "남극 수당"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이러한 수당이 복지의 한 부분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 수당은 복지라기보다는 힘든 생활을 돈으로 채운다는 보상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복지의 기본적인 근본은 단순한 금액 지급을 넘어서야 합니다. 누군가가 불편하거나 고립되어 있는 상황을 줄여주기 위해 지속적이고 정서적인 지원을 하는 제도가 바로 복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극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얼음 위에 지어진 기지에서의 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단조롭고 깊은 고립감을 유발할 것입니다. 사소한 감정의 변화조차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어려운 환경 인 셈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회성 수당이 아니라, 일과 삶의 균형을 고려한 심리적인 상담과 기지 내에서의 자율적인 복지 장치, 가족과 정기적인 감정 교류를 할 수 있는 복지 환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남극 복지에 대한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머물고 있는 인원들이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수라는 이유로 외면받는다면, 복지는 다수의 권리를 위한 도구일 뿐,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 권리라는 원래의 의미를 잃게 됩니다. 남극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특별한 복지 체계가 마련되어야 하며, 이들은 고용주의 이름이 아닌 지구의 시민으로 보호받아야 할 것입니다.
2. 지구의 끝, 고립된 공간에 머무는 법
많은 이들이 지구의 끝이라고 표현하는 남극은 실제로 우주보다 더 고립된 환경일지도 모릅니다. 무중력인 공간의 우주와 달리 남극은 중력은 있지만 이동이 어렵고, 계절은 있지만 변화는 극단적이며, 인간은 있지만 연결의 고리는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이런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외로움은 상상 그 이상일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심리 복지"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남극에 머무는 사람들은 주어진 임무의 마음가짐과 연구 목적을 가지고 본인 스스로 이곳을 선택했을 겁니다. 하지만 선택했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완벽히 준비된 것은 아닙니다. 하루하루 쌓이는 고립감과 의사소통의 지연, 자연과의 싸움 속에서 누구나 깊은 피로를 경험할 것입니다. 이때에는 단순한 수당이나 물자를 지원하는 것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회복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를 가상현실을 통해서 가족 면담이나 기지 간의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 스트레스 신호를 감지하는 웨어러블 기기 등을 통한 새로운 복지를 실천해 나아가는 상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남극은 서로를 의지하거나 협력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공동체 문화는 필수인 공간입니다. 그로 인해, 개개인의 감정이 무시되거나, 표현되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토대로 감정 노동에 대한 인식의 개선과 고립을 예방할 수 있는 정서적인 돌봄의 체계를 잘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아무리 적은 인원들이 머무는 곳일지라도, 그 공간이 얼마나 극단적인가에 따라 더 세심하게 설계되어야 합니다. 남극은 바로 그런 "복지의 응급지대"입니다.
3. 극지의 삶, 미래의 실험실
극한의 환경 속에 존재하는 남극은 오히려 그 특수성 덕분에 복지 제도를 실험하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일지도 모릅니다. 이곳은 단기간에 일정 수의 사람들이 고립된 채 공동체의 생활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규모의 사회적인 실험이 가능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복지 제도처럼 인간의 심리와 신체, 관계 등의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는 정책을 시험해 보기엔 더없이 이상적인 무대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 제도를 남극 기지 내에서 먼저 도입해 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요? 모든 생활이 공동체 생활 내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자원을 운영하는 방법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 그리고 개인의 심리적인 안정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을지를 구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복지를 중심으로 한 실험도 가능할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마주 보고 대하는 관계가 극도로 제한된 환경 속에서 감정의 보살핌이나 가상 면담 시스템, 심리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기술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해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실험들이 단지 이론적인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사람들의 삶에 직접 사용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입니다. 나아가 이런 실험들이 훗날 고립된 지역의 복지와 날씨에 따른 위기 대응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남극은 하나의 가능성이자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복지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때로는 환경이 새로운 복지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남극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새로운 복지의 가능성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